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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조(始祖)는 불분명하다. 약 6,000만 년 전 신생대 팔레오세에 등장한 작고 사나운 포유동물 '메소닉스 전세담보대출금리 (Mesonyx)'일 수 있고, 200만 년 전의 다이어울프나 인류가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화석 종일 수도 있다. 냉엄한 먹이사슬과 극단적인 기후 변화의 지질학적 세월에 부대끼며 수많은 종들이 명멸하는 동안 아마도 어떤 유전자가 기적의 확률로 늑대에게 전해져 지금처럼 진화했을 것이다. 늑대의 시간은 약 6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등 고 모집내용 인류의 시간과 한 공간에서 겹쳤다. 이후 생태계의 유사한 지위를 차지한 채 먹잇감을 두고 경쟁했을 두 종이 어쩌다 공존-협력의 길을 선택했는지, 늑대가 먼저 인간이 먹다 남긴 사냥감에 군침을 흘리며 다가왔는지(청소부 가설), 인간이 먼저 어느 순한 늑대(새끼)를 품어 사냥 파트너로 구애를 했는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시작이 어떠했든 그렇게 일부 늑대는 개로 소분방법 진화했고 고인류도 그들과 더불어 현생 인류로 공진화했다. 약 40만 년 전 잉글랜드 켄트 박스그로브(Boxgrove) 지역의 한 전기 구석기 호미닌은, 우연인지 인연인지 알 수 없지만, 늑대와 나란히 누워 화석이 됐다. 그 화석 늑대를 최초의 ‘개’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늑대-개와 인간의 저 벅차고 장엄한 인연과 진화의 불가사의를 규명하 데키마셍 기 위한 대담한 실험이 1959년 시베리아 오지의 한 모피 농장에서 은밀히, 두 과학자와 100여 마리 은여우(silver wolf)들에 의해 시작됐다. 은여우들 가운데 인간에게 덜 적대적인 개체들을 추려 교배-번식-선별을 반복함으로써 세대별 외형과 습성, 호르몬, 유전적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유례없는 장기 실험. 그 험난한 실험 우리은행 자소서 항목 연구의 주역 중 한 명인 러시아 동물유전학자 류드밀라 트루트(Lyudmila N. Trut, 1933.11.6~ 2024.10.9)가 최근 별세했다. 향년 90세.
스탈린 체제의 1930~50년대는 악명 높은 사이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1898~1976)가 과학계를 좌지우지하던 유전학의 암흑기였다. 교육과 노동으로 사회주의형 인간을 양성할 수 있다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유전자- 진화이론은 한마디로 반체제 부르주아 과학이었다. 종자은행의 개념을 정립한 식물 육종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를 비롯한 수많은 진화학자들이 숙청되고 유배되고 처형당했다.
누에 육종학자였던 형(Nikolai)을 그렇게 잃은 다윈주의자 드미트리 벨랴예프(Dmitry Belyayev, 1917~1985)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산하 이바노프농업연구소를 졸업하고 대외무역부 소속 모스크바 중앙연구소 모피동물 육종과장으로 일하던 그는 48년 ‘리센코이즘(Lysenkoism)’을 비판하다 좌천당했다. 그리고 스탈린 사후인 58년 갓 조성된 노보시비르스크 과학 단지 아카뎀고로도크(Akademgorodok)의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IC&G)’ 부소장으로 발탁됐다. 러시아 모피산업은 소비에트 주력 수출산업이었고, 그는 모피 품질 개선과 사육-도축 용이성 증대를 위해 꼭 필요한 학자였다.
하지만 그에겐 늑대-개의 진화를 압축적인 시뮬레이션 실험으로 재연해 그 과정의 유전학적 비밀을 찾겠다는 오랜 야심이 있었고, 52년부터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인근의 한 은여우 농장에서 간접적으로 저 실험을 시도한 바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온 거였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위세는 약해졌지만 65년 리센코가 실각하기까지 유전학은 공식적으로 사이비 과학이었고 스탈린 후임 서기장(흐루쇼프)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실험은 은밀해야 했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구소련 노보시비르스크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에서 시베리아 은여우를 어루만지는 1984년의 드미트리 벨랴예프(왼쪽)와 그의 제자 겸 동료 연구자로서 85년 벨랴에프 사후 최근까지 그 연구를 이어온 트루트의 1974년 모습. Sputnik/Science Photo Library; Wikimedia Commons
연구소 취임 직후인 1958년 초 벨랴예프는 친구인 국립 모스크바대 동물 행동 유전학자 레오니드 크루신스키(1911~1984)를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믿고 맡길 만한 연구자를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그 자리에 마침 갓 대학원에 진학한 만 24세 여성 트루트가 있었다. 트루트는 “소비에트 과학계에선 보기 드물게 젊은 여성에게도 권위적이지 않은" 벨랴예프의 인품과 “개처럼 꼬리 치는 여우”를 만들겠다는 계획, 찌를 듯한 푸른 눈빛에 담긴 강한 열정에 매료됐다. 즉석 면접을 거쳐 그는 실험에 합류하게 됐고, 그해 봄, 항공공학 기술자 남편(Volodya)과 어린 딸(Marina)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모스크바 교외에서 태어나 줄곧 친인척과 대가족을 이뤄 한동네에서 살아온 그에게 시베리아는 벨랴예프의 프로젝트만큼이나 낯설고 두렵고 막막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에 남편이 흔쾌히 동조했고, 어머니도 손녀를 돌봐주겠다고 거들었다. 사실 트루트에게 “동물에 대한 병적인 사랑”을 물려준 이도 어머니였다. 개를 끔찍이도 좋아해 늘 반려견을 키웠던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기의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떠돌이 개를 만나면 먹을거리를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트루트도 평생 늘 호주머니에 개 간식거리를 챙겨 다녔다.
벨랴예프의 가설은 간명했다. 가축화된 동물들이 지니는 보편적인 특징들(가축화 신드롬), 즉 처진 귀와 말린 꼬리, 뭉툭한 주둥이(유형성숙), 얼룩덜룩한 털, 상대적으로 긴 생식기간,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등이 유전적 변이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 그는 인류의 조상이 상대적으로 순한 늑대를 선택했을 것이고, 그 늑대들이 번식을 통해 점차 개로 길들여졌으리라 가정했다. 한마디로 그는 순치성(tameness)이야말로 늑대-개 가축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그 메커니즘을 개과 동물인 은여우 길들이기를 통해 외형과 습성뿐 아니라 유전자 단위 변이를 통해 밝히고자 했다.
트루트의 첫 임무는 실험에 적합한 은밀한 장소와 실험 대상 여우를 확보하는 거였다. 그는 시베리아 타이가 숲속 곳곳에 산재한 국영 모피 농장들을 누벼, 연구소에서 약 360km 떨어진 카자흐스탄-몽골 국경의 레스노이(Lesnoy) 농장을 찾아냈다.
트루트는 새끼 여우들 중 습성과 용모 등이 뛰어난(잘 길들여진) 개체 10%만 남기는 방법으로 선별-짝짓기를 거듭함으로써 수십만 년 늑대-개의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재현해냈다. 연구소의 새끼 여우(위)와 성체. Institute of Cytology and Genetics
59년, 은여우 수컷 30마리와 암컷 100마리로 실험이 시작됐다. 2인치 두께의 두툼한 장갑을 끼고 철창 사이로, 개체별로 엄격하게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접촉하며 여우들의 반응을 관찰-기록하는 단순 작업. 우리에서 풍기는 악취도 소음도 고통스러웠지만, 조금만 다가가도 “불을 내뿜는 용들”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드는 공격성에 주눅이 들곤 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 호기심으로 그에게 다가서는 녀석, 우리 반대편으로 피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는 덜 앙칼진 5~10%를 선발, 근친교배 가능성을 피해 짝짓기를 하게 한 뒤 이듬해 새끼들을 받아 또 실험-관찰-선발 과정을 반복했다.
시베리아 은여우는 매년 한 차례 11월 말~1월 말 교미해 4월께 새끼(평균 4~6마리)를 낳는다. 새끼들은 약 6개월 뒤면 성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는 연구소에서 기차로 12시간, 버스로 1시간을 달려야 닿는 현장(농장)을, 여우들의 생태 주기에 맞춰 매년 4차례씩 들러 매번 한두 달씩 머물며, 여우들의 배필을 정하고 짝을 짓게 하고 새끼를 받아 관찰하고 선별하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벨랴예프와 상의했다. 겨울 섭씨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도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일과. 전화는커녕 우편도 너무 더뎌 별 소용이 없는 곳이었다. 그는 대개 혼자였다. 걸음마를 갓 뗀 딸보다 여우와 더 오래 지내는 일상. 언제 성과가 날지, 또 나기는 할지 기약 없는 미래. 버스를 놓쳐 한겨울 한데나 다를 바 없던 역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 회의와 불안으로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봄이 와 털뭉치 같은 새끼들이 태어나고, 뭔가 달라진 면모들을 발견해가면서 새로운 기대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는 사회화-순치화 정도에 따라 여우들을 3등급으로 분류, 가장 우수한 1급만 남기고 나머지는 농장으로 되돌려 보냈다. 정부의 정식 승인을 얻어 연구소 인근에 직영 농장을 마련하기까지 약 10년간 그는 사실상 혼자 저 현장 연구를 이어갔다.4대째에 처음 그를 보고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녀석이 등장했다. 6대째 새끼들이 특히 강렬했다. 그가 나타나면 앞다퉈 몰려와 배를 만져달라고 몸을 뒤집고 손을 핥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미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칭얼대는 녀석이 나타난 것도 그 세대가 처음이었다. 그는 녀석들에게 새로운 등급인 ‘1E(1-Elite)’ 등급을 부여했다.‘엘리트’ 여우들은 10대째엔 전체 새끼의 18%가 됐고 20대엔 35%가 됐다. 1999년 미국 저명 과학저널 ‘American Scientist’에 기고한 에세이에 그는 “근년 우리 실험 여우는 70~80%가 엘리트 여우들”이라고 썼다.
10대째에 태어난 ‘메흐타(Mechta, 꿈이란 뜻)’란 이름의 여우는 통상 생후 2주째면 뾰족하게 서는 귀가 석 달이 되도록 리트리버처럼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가축화 신드롬은 20~30세대를 거치며 확연해졌다. 주둥이가 뭉툭해지고 두개골이 작아지고 꼬리가 말리고 다리 길이가 짧아지고···. 그는 74년 벨랴예프와 상의한 끝에 15대째 개체인 ‘푸싱카(Pushinka, 털북숭이란 뜻)’를 아예 입양해 동거 실험을 진행했다. 긴장한 나머지 숨기 바쁘던 푸싱카는 점차 책상에 앉은 트루트의 발치에 드러눕고 침대에 뛰어들고 창틀에 앉아 외출한 그를 기다리곤 했다. 목줄을 매고 밤산책을 나간 그해 7월 어느 밤 푸싱카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어둠 속을 향해 개처럼 짖었다고 한다. 야간 경비원의 기척을 알아챈 거였다. 푸싱카는 트루트가 경비원과 마주서서 담소를 나누자 그제야 짖기를 멈췄다. 트루트는 2017년 에세이에 “우리는 약 15년 유전적 선택의 산물인 엘리트 여우들이 인간과 함께 살면서 개와 같은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약 석 달 반 전에 동거를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 결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야생 여우들은 생후 16일이 지나야 청각 자극에 반응하고 18~19일 무렵 눈을 뜬다. 트루트의 여우들은 평균 이틀 먼저 소리에 반응하고 하루 일찍 눈을 떴다. 야생 여우가 생후 6주부터 보이는 공포반응을 그의 여우들은 9주가 지나서야 보였다. 트루트의 여우들은 12세대를 거치며 혈장 내 스트레스 호르몬의 양이 표나게 줄었고 증가 패턴도 완만해졌다. 반면 공격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는 세로토닌과 관련 대사 물질 수치는 높아졌다. 그만큼 사회화됐다는, 내분비학적으로도 길들여졌다는 의미였다. 짝짓기 기간도 11~5월로 2배가량 늘어났다. 국영농장 사육사들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한 시즌 두 차례 짝짓기가 이뤄진 적도 있었다. 벨랴예프와 트루트는 대조군(야생 여우) 실험뿐 아니라 ‘대리모 실험’, 즉 엘리트 여우의 수정란을 덜 길들여진 여우의 자궁에 이식해 새끼들의 특징이 대리모가 아닌 친모(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벨랴예프는 85년 말 폐암으로 숨졌고, 트루트는 후임 소장으로서 실험을 이어갔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초기인 1959년 9월 흐루쇼프가 중국 마오쩌둥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아카뎀고로도크를 방문했다. 그해 1월 리센코 휘하의 과학위원회 위원들이 세포학 유전학연구소를 시찰한 뒤 “연구 방법론이 부적절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였다. 연구소를 폐쇄할 작정이던 서기장을 설득한 것은 그의 딸 라다(Rada, 1929~2016)였다. 저널리즘을 전공했지만 생물학 저널을 출간할 만큼 과학, 특히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라다는 리센코를 경멸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흐루쇼프는 대신 연구소장을 해고했고, 벨랴예프가 소장이 됐다.
시베리아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의 한 젊은 연구자가 길들여진 은여우와 노는 모습이라고 한다. 2012년 연구소 블로그 사진. icgbio.ru
서방 사회에 드문드문 알려졌던 야생여우 가축화 연구는 1999년 트루트가 미국 저널 ‘American Scientist’에 기고한 ‘초기 개과동물의 가축화: 여우 농장 실험’이란 에세이를 통해 전면적으로 소개됐다. “만 40년 여우 길들이기를 통해 확인한 발달 변화와 행동 유전학의 관련성”을 데이터와 함께 소개한 그 에세이의 진짜 목적은 마지막 단락, 즉 자금난 때문에 중단 위기에 몰린 실험 현실을 알리는 거였다. 연방 해체와 98년 금융위기 여파로 직원 급여는 물론이고 여우 사료를 댈 형편도 안 되는 지경이었다. 트루트는 여우들을 모피 농장에 되팔아 비용을 충당하느라 1996년 700여 마리에 이르던 실험 여우를 100여 마리로 줄여야 했다. 그는 이제 그마저도 불가능해 스칸디나비아의 한 모피 업자에게 여우 일부를 팔았고 반려동물로 새끼 여우를 분양하는 상업 벤처를 구상 중이라고 썼다. “여우 개체수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응용 및 기초 연구 모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2017년 트루트와의 공저 ‘은여우 길들이기(원제 ‘How To Tame A Fox)’를 쓴 미국 루이빌대 생물학자 리 앨런 듀가킨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연구자들은 사비로 사료를 사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2014년 유가 폭락에 이은 경제위기와 루블화 가치 폭락 와중에 또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과학 재단과 과학자들이 연구소를 후원하며 공동 연구를 청하곤 했다. 근년의 과학자들은 길들인 여우와 야생 여우의 유전체 지도를 비교하며 가축화 유전자의 실체를 찾고 있다.
은여우의 평균 수명은 6~10년이지만, 모피 농장 여우들은 대개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책에 따르면 트루트는 생텍쥐페리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건넨 “길들인 것에는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한다"던 말을 평생 지침처럼 여겼다고 한다. 65년 연구 기간 동안, 수많은 여우들을 농장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던 그에겐 저 말이 사무치는 원망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오랜 꿈은 과학적 업적과 별개로, 여우가 모피 가축이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반려 동물로 인정받는 거였다. 그는 그 가능성을 믿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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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조(始祖)는 불분명하다. 약 6,000만 년 전 신생대 팔레오세에 등장한 작고 사나운 포유동물 '메소닉스 전세담보대출금리 (Mesonyx)'일 수 있고, 200만 년 전의 다이어울프나 인류가 아직 만나지 못한 미지의 화석 종일 수도 있다. 냉엄한 먹이사슬과 극단적인 기후 변화의 지질학적 세월에 부대끼며 수많은 종들이 명멸하는 동안 아마도 어떤 유전자가 기적의 확률로 늑대에게 전해져 지금처럼 진화했을 것이다. 늑대의 시간은 약 6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등 고 모집내용 인류의 시간과 한 공간에서 겹쳤다. 이후 생태계의 유사한 지위를 차지한 채 먹잇감을 두고 경쟁했을 두 종이 어쩌다 공존-협력의 길을 선택했는지, 늑대가 먼저 인간이 먹다 남긴 사냥감에 군침을 흘리며 다가왔는지(청소부 가설), 인간이 먼저 어느 순한 늑대(새끼)를 품어 사냥 파트너로 구애를 했는지도 여전히 논쟁거리다.시작이 어떠했든 그렇게 일부 늑대는 개로 소분방법 진화했고 고인류도 그들과 더불어 현생 인류로 공진화했다. 약 40만 년 전 잉글랜드 켄트 박스그로브(Boxgrove) 지역의 한 전기 구석기 호미닌은, 우연인지 인연인지 알 수 없지만, 늑대와 나란히 누워 화석이 됐다. 그 화석 늑대를 최초의 ‘개’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늑대-개와 인간의 저 벅차고 장엄한 인연과 진화의 불가사의를 규명하 데키마셍 기 위한 대담한 실험이 1959년 시베리아 오지의 한 모피 농장에서 은밀히, 두 과학자와 100여 마리 은여우(silver wolf)들에 의해 시작됐다. 은여우들 가운데 인간에게 덜 적대적인 개체들을 추려 교배-번식-선별을 반복함으로써 세대별 외형과 습성, 호르몬, 유전적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유례없는 장기 실험. 그 험난한 실험 우리은행 자소서 항목 연구의 주역 중 한 명인 러시아 동물유전학자 류드밀라 트루트(Lyudmila N. Trut, 1933.11.6~ 2024.10.9)가 최근 별세했다. 향년 90세.
스탈린 체제의 1930~50년대는 악명 높은 사이비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1898~1976)가 과학계를 좌지우지하던 유전학의 암흑기였다. 교육과 노동으로 사회주의형 인간을 양성할 수 있다는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에 유전자- 진화이론은 한마디로 반체제 부르주아 과학이었다. 종자은행의 개념을 정립한 식물 육종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1887~1943)를 비롯한 수많은 진화학자들이 숙청되고 유배되고 처형당했다.
누에 육종학자였던 형(Nikolai)을 그렇게 잃은 다윈주의자 드미트리 벨랴예프(Dmitry Belyayev, 1917~1985)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소비에트 과학아카데미 산하 이바노프농업연구소를 졸업하고 대외무역부 소속 모스크바 중앙연구소 모피동물 육종과장으로 일하던 그는 48년 ‘리센코이즘(Lysenkoism)’을 비판하다 좌천당했다. 그리고 스탈린 사후인 58년 갓 조성된 노보시비르스크 과학 단지 아카뎀고로도크(Akademgorodok)의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IC&G)’ 부소장으로 발탁됐다. 러시아 모피산업은 소비에트 주력 수출산업이었고, 그는 모피 품질 개선과 사육-도축 용이성 증대를 위해 꼭 필요한 학자였다.
하지만 그에겐 늑대-개의 진화를 압축적인 시뮬레이션 실험으로 재연해 그 과정의 유전학적 비밀을 찾겠다는 오랜 야심이 있었고, 52년부터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인근의 한 은여우 농장에서 간접적으로 저 실험을 시도한 바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온 거였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위세는 약해졌지만 65년 리센코가 실각하기까지 유전학은 공식적으로 사이비 과학이었고 스탈린 후임 서기장(흐루쇼프)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실험은 은밀해야 했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구소련 노보시비르스크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에서 시베리아 은여우를 어루만지는 1984년의 드미트리 벨랴예프(왼쪽)와 그의 제자 겸 동료 연구자로서 85년 벨랴에프 사후 최근까지 그 연구를 이어온 트루트의 1974년 모습. Sputnik/Science Photo Library; Wikimedia Commons
연구소 취임 직후인 1958년 초 벨랴예프는 친구인 국립 모스크바대 동물 행동 유전학자 레오니드 크루신스키(1911~1984)를 찾아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믿고 맡길 만한 연구자를 추천해달라고 청했다. 그 자리에 마침 갓 대학원에 진학한 만 24세 여성 트루트가 있었다. 트루트는 “소비에트 과학계에선 보기 드물게 젊은 여성에게도 권위적이지 않은" 벨랴예프의 인품과 “개처럼 꼬리 치는 여우”를 만들겠다는 계획, 찌를 듯한 푸른 눈빛에 담긴 강한 열정에 매료됐다. 즉석 면접을 거쳐 그는 실험에 합류하게 됐고, 그해 봄, 항공공학 기술자 남편(Volodya)과 어린 딸(Marina)과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모스크바 교외에서 태어나 줄곧 친인척과 대가족을 이뤄 한동네에서 살아온 그에게 시베리아는 벨랴예프의 프로젝트만큼이나 낯설고 두렵고 막막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결심에 남편이 흔쾌히 동조했고, 어머니도 손녀를 돌봐주겠다고 거들었다. 사실 트루트에게 “동물에 대한 병적인 사랑”을 물려준 이도 어머니였다. 개를 끔찍이도 좋아해 늘 반려견을 키웠던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기의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떠돌이 개를 만나면 먹을거리를 나눠주곤 했다고 한다. 트루트도 평생 늘 호주머니에 개 간식거리를 챙겨 다녔다.
벨랴예프의 가설은 간명했다. 가축화된 동물들이 지니는 보편적인 특징들(가축화 신드롬), 즉 처진 귀와 말린 꼬리, 뭉툭한 주둥이(유형성숙), 얼룩덜룩한 털, 상대적으로 긴 생식기간, 스트레스 호르몬 감소 등이 유전적 변이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것. 그는 인류의 조상이 상대적으로 순한 늑대를 선택했을 것이고, 그 늑대들이 번식을 통해 점차 개로 길들여졌으리라 가정했다. 한마디로 그는 순치성(tameness)이야말로 늑대-개 가축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그 메커니즘을 개과 동물인 은여우 길들이기를 통해 외형과 습성뿐 아니라 유전자 단위 변이를 통해 밝히고자 했다.
트루트의 첫 임무는 실험에 적합한 은밀한 장소와 실험 대상 여우를 확보하는 거였다. 그는 시베리아 타이가 숲속 곳곳에 산재한 국영 모피 농장들을 누벼, 연구소에서 약 360km 떨어진 카자흐스탄-몽골 국경의 레스노이(Lesnoy) 농장을 찾아냈다.
트루트는 새끼 여우들 중 습성과 용모 등이 뛰어난(잘 길들여진) 개체 10%만 남기는 방법으로 선별-짝짓기를 거듭함으로써 수십만 년 늑대-개의 진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재현해냈다. 연구소의 새끼 여우(위)와 성체. Institute of Cytology and Genetics
59년, 은여우 수컷 30마리와 암컷 100마리로 실험이 시작됐다. 2인치 두께의 두툼한 장갑을 끼고 철창 사이로, 개체별로 엄격하게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접촉하며 여우들의 반응을 관찰-기록하는 단순 작업. 우리에서 풍기는 악취도 소음도 고통스러웠지만, 조금만 다가가도 “불을 내뿜는 용들”처럼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드는 공격성에 주눅이 들곤 했다고 한다. 물론 일부 호기심으로 그에게 다가서는 녀석, 우리 반대편으로 피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는 덜 앙칼진 5~10%를 선발, 근친교배 가능성을 피해 짝짓기를 하게 한 뒤 이듬해 새끼들을 받아 또 실험-관찰-선발 과정을 반복했다.
시베리아 은여우는 매년 한 차례 11월 말~1월 말 교미해 4월께 새끼(평균 4~6마리)를 낳는다. 새끼들은 약 6개월 뒤면 성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는 연구소에서 기차로 12시간, 버스로 1시간을 달려야 닿는 현장(농장)을, 여우들의 생태 주기에 맞춰 매년 4차례씩 들러 매번 한두 달씩 머물며, 여우들의 배필을 정하고 짝을 짓게 하고 새끼를 받아 관찰하고 선별하고 그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벨랴예프와 상의했다. 겨울 섭씨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도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일과. 전화는커녕 우편도 너무 더뎌 별 소용이 없는 곳이었다. 그는 대개 혼자였다. 걸음마를 갓 뗀 딸보다 여우와 더 오래 지내는 일상. 언제 성과가 날지, 또 나기는 할지 기약 없는 미래. 버스를 놓쳐 한겨울 한데나 다를 바 없던 역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 회의와 불안으로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봄이 와 털뭉치 같은 새끼들이 태어나고, 뭔가 달라진 면모들을 발견해가면서 새로운 기대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는 사회화-순치화 정도에 따라 여우들을 3등급으로 분류, 가장 우수한 1급만 남기고 나머지는 농장으로 되돌려 보냈다. 정부의 정식 승인을 얻어 연구소 인근에 직영 농장을 마련하기까지 약 10년간 그는 사실상 혼자 저 현장 연구를 이어갔다.4대째에 처음 그를 보고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녀석이 등장했다. 6대째 새끼들이 특히 강렬했다. 그가 나타나면 앞다퉈 몰려와 배를 만져달라고 몸을 뒤집고 손을 핥는 녀석들도 있었다. 어미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칭얼대는 녀석이 나타난 것도 그 세대가 처음이었다. 그는 녀석들에게 새로운 등급인 ‘1E(1-Elite)’ 등급을 부여했다.‘엘리트’ 여우들은 10대째엔 전체 새끼의 18%가 됐고 20대엔 35%가 됐다. 1999년 미국 저명 과학저널 ‘American Scientist’에 기고한 에세이에 그는 “근년 우리 실험 여우는 70~80%가 엘리트 여우들”이라고 썼다.
10대째에 태어난 ‘메흐타(Mechta, 꿈이란 뜻)’란 이름의 여우는 통상 생후 2주째면 뾰족하게 서는 귀가 석 달이 되도록 리트리버처럼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가축화 신드롬은 20~30세대를 거치며 확연해졌다. 주둥이가 뭉툭해지고 두개골이 작아지고 꼬리가 말리고 다리 길이가 짧아지고···. 그는 74년 벨랴예프와 상의한 끝에 15대째 개체인 ‘푸싱카(Pushinka, 털북숭이란 뜻)’를 아예 입양해 동거 실험을 진행했다. 긴장한 나머지 숨기 바쁘던 푸싱카는 점차 책상에 앉은 트루트의 발치에 드러눕고 침대에 뛰어들고 창틀에 앉아 외출한 그를 기다리곤 했다. 목줄을 매고 밤산책을 나간 그해 7월 어느 밤 푸싱카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어둠 속을 향해 개처럼 짖었다고 한다. 야간 경비원의 기척을 알아챈 거였다. 푸싱카는 트루트가 경비원과 마주서서 담소를 나누자 그제야 짖기를 멈췄다. 트루트는 2017년 에세이에 “우리는 약 15년 유전적 선택의 산물인 엘리트 여우들이 인간과 함께 살면서 개와 같은 충성심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약 석 달 반 전에 동거를 시작했다. 나는 그날 밤 결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야생 여우들은 생후 16일이 지나야 청각 자극에 반응하고 18~19일 무렵 눈을 뜬다. 트루트의 여우들은 평균 이틀 먼저 소리에 반응하고 하루 일찍 눈을 떴다. 야생 여우가 생후 6주부터 보이는 공포반응을 그의 여우들은 9주가 지나서야 보였다. 트루트의 여우들은 12세대를 거치며 혈장 내 스트레스 호르몬의 양이 표나게 줄었고 증가 패턴도 완만해졌다. 반면 공격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는 세로토닌과 관련 대사 물질 수치는 높아졌다. 그만큼 사회화됐다는, 내분비학적으로도 길들여졌다는 의미였다. 짝짓기 기간도 11~5월로 2배가량 늘어났다. 국영농장 사육사들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한 시즌 두 차례 짝짓기가 이뤄진 적도 있었다. 벨랴예프와 트루트는 대조군(야생 여우) 실험뿐 아니라 ‘대리모 실험’, 즉 엘리트 여우의 수정란을 덜 길들여진 여우의 자궁에 이식해 새끼들의 특징이 대리모가 아닌 친모(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벨랴예프는 85년 말 폐암으로 숨졌고, 트루트는 후임 소장으로서 실험을 이어갔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초기인 1959년 9월 흐루쇼프가 중국 마오쩌둥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아카뎀고로도크를 방문했다. 그해 1월 리센코 휘하의 과학위원회 위원들이 세포학 유전학연구소를 시찰한 뒤 “연구 방법론이 부적절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직후였다. 연구소를 폐쇄할 작정이던 서기장을 설득한 것은 그의 딸 라다(Rada, 1929~2016)였다. 저널리즘을 전공했지만 생물학 저널을 출간할 만큼 과학, 특히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라다는 리센코를 경멸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흐루쇼프는 대신 연구소장을 해고했고, 벨랴예프가 소장이 됐다.
시베리아 세포학 유전학 연구소의 한 젊은 연구자가 길들여진 은여우와 노는 모습이라고 한다. 2012년 연구소 블로그 사진. icgbio.ru
서방 사회에 드문드문 알려졌던 야생여우 가축화 연구는 1999년 트루트가 미국 저널 ‘American Scientist’에 기고한 ‘초기 개과동물의 가축화: 여우 농장 실험’이란 에세이를 통해 전면적으로 소개됐다. “만 40년 여우 길들이기를 통해 확인한 발달 변화와 행동 유전학의 관련성”을 데이터와 함께 소개한 그 에세이의 진짜 목적은 마지막 단락, 즉 자금난 때문에 중단 위기에 몰린 실험 현실을 알리는 거였다. 연방 해체와 98년 금융위기 여파로 직원 급여는 물론이고 여우 사료를 댈 형편도 안 되는 지경이었다. 트루트는 여우들을 모피 농장에 되팔아 비용을 충당하느라 1996년 700여 마리에 이르던 실험 여우를 100여 마리로 줄여야 했다. 그는 이제 그마저도 불가능해 스칸디나비아의 한 모피 업자에게 여우 일부를 팔았고 반려동물로 새끼 여우를 분양하는 상업 벤처를 구상 중이라고 썼다. “여우 개체수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응용 및 기초 연구 모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2017년 트루트와의 공저 ‘은여우 길들이기(원제 ‘How To Tame A Fox)’를 쓴 미국 루이빌대 생물학자 리 앨런 듀가킨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 연구자들은 사비로 사료를 사고,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 기부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2014년 유가 폭락에 이은 경제위기와 루블화 가치 폭락 와중에 또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과학 재단과 과학자들이 연구소를 후원하며 공동 연구를 청하곤 했다. 근년의 과학자들은 길들인 여우와 야생 여우의 유전체 지도를 비교하며 가축화 유전자의 실체를 찾고 있다.
은여우의 평균 수명은 6~10년이지만, 모피 농장 여우들은 대개 1년을 넘기지 못한다. 책에 따르면 트루트는 생텍쥐페리의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건넨 “길들인 것에는 영원히 책임을 져야 한다"던 말을 평생 지침처럼 여겼다고 한다. 65년 연구 기간 동안, 수많은 여우들을 농장으로 되돌려 보내야 했던 그에겐 저 말이 사무치는 원망 같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오랜 꿈은 과학적 업적과 별개로, 여우가 모피 가축이 아니라 인류의 새로운 반려 동물로 인정받는 거였다. 그는 그 가능성을 믿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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